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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포했으나 숨진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중국인들이 많은 조선인을 살해했다”는 오보를 실었고 호외까지 뿌렸다.
창춘지국장이 일본 영사관 자료만 믿고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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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도 비슷한 논조로 보도했다.
기사를 보고 흥분한 군중은 서울, 평양, 인천.
1930년 중국 군벌 장쭤린(張作霖)의 휘하에 들어간 이종형(손진환)은 만보산 사건을 대서특필한창춘지국장김리삼(이병술)을 살해한다.
김리삼이 표면상 조선농민의 비극을 참지 못한 애국지사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과장보도를 통해.
4월창춘도전공사(稻田公司)의 경리 하오용더(郝永德)가 이통하(伊通河) 기슭에 있는 만보산 지역의 미개간지 약 3 헥타아르를 조차하였으며, 다시 이주 한인 이승훈(李昇薰) 등 8인과 10년 기한으로 조차 계약을 했다.
당시 한인 농민 180 명을 동원하여 수로 공사.
서울지국장에게 평양에서의'자유 취재'를 허용했으며, 5월 9일에는 만경대 유희장을 현지지도하면서 관리부실에 대해 질책하고, 보도블록 사이에 자라난 잡풀을 직접 뽑기도 했다.
또 6월에 들어서는 그 동안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이 해외출장 가는 당과 정부의.
김일성은창춘(長春)을 중심으로 한 중국 지린(吉林)성 일대에서 중국인 주바오중(朱保中)이 이끈 중국 공산당군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에 속해, 소대~중대 정도의 병력을 이끈 사장(師長)을 했다.
일본군(관동군)의 토벌이 강화되자 주바오중은 동북항일연군.